
경로당은 ‘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’에 의해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지을 때 꼭 설치해야 하는 주민공동시설이다. 2006년부터 100가구 이상 규모 공동주택은 경로당을 만들어야 한다. 다만 이 같은 법과 제도 속 경로당 설치 규정은 운영·관리 방식에 대한 지침 없이 시설 설치 면적만 규제하고 있어, 다양해진 고령자 유형과 수요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.

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9~10월 서울 아파트에 거주하는 만 60세 이상 5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, 응답자의 89.6%(448명)는 단지 내 경로당 위치를 알고 있으나 31.2%(156명)만 실제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.
경로당 위치를 알고 있다고 응답한 448명 가운데 남성(151명)은 21.2%만 실제로 경로당을 이용했고, 여성(297명)은 40.6%가 경로당을 다녔다. 연령별로도 차이가 컸다. 만 75세 이상(182명)은 57.1%가 경로당을 이용한다고 답했지만, 만 65~74세(183명)는 28.4%, 만 60~64세(83명)는 0%였다.

반면 경로당을 이용하는 156명 가운데 78.8%는 “친한 친구나 이웃과 교류하기 위해서”라고 답했다. 57.5%는 “날씨가 덥거나 추울 때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”, 57.1%는 “무료 혹은 저렴한 식사와 간식을 누리기 위해서”라고 했다.
서울시 경로당의 85.6%는 주 1회 이상 식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. 이 중 22.6%는 주 5일 내내 식사 서비스를 제공했다. 다만 경로당 이용자의 55.1%만이 식사 외 다른 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.
즉, 현재 아파트 경로당은 쉴 수 있는 공간과 특정 요일 식사 제공 등 기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, 그외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은 부족한 상태다. 생활체육, 건강관리, 취미·오락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.

현재 아파트 거주에 만족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“가볍고 안전한 산책이 가능한 공간”(88.0%), “거주 단지의 안정성 및 쾌적성”(86.6%) 등을 꼽는 응답이 많았다. 불만족스러운 점으로는 병원 등 의료시설 접근성, 교육 및 문화시설 접근성 등이 꼽혔다.

다만 아파트 단지는 사유 재산이기 때문에 과도한 공공 개입은 반발을 일으킬 수 있다. 서울연구원은 필수 주민공동시설을 경로당에 국한하지 않고 재가 노인복지시설(고령자가 자기 집에서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시설), 노인의료복지시설, 노인주거복지시설 중 하나를 선택해 설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.
고령 친화 아파트 인증제 도입도 대안으로 제시됐다. 고령자 이용 가능 시설 수, 경로당 운영 서비스 및 프로그램 수, 경로당 외 노인복지시설의 다양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아파트를 등급화하고, 인증 단지에 여러 혜택을 주는 방안이다.
임근호 기자 eigen@hankyung.com